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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겨울, 운주사

질경이" 2006. 12. 18. 19:46

 

 

무장무장 눈 내리더이다.

 

절 마당에는 들어서지도 못하고, 산 말랭이에 눈 덮고 누워 계실 와불님은 뵙지도 못했습니다. 이 곳을 간절하게 그리는 이가 생각나서 '발목까지 눈 내린 겨울 운주사' 달랑 메모 하나 남기고 돌아나왔습니다.

 

 

 

늘상 그리워는 해도 오늘도 역시 미륵님들 가까이는 가지도 못했지요.  이것도, 저것도 포기하지 못하고,  다 버리지도 못하니 당연히 길 떠나지 못함 같이 도리없이 내 발만 다 젖을까 해서입니다. 쏟아지는 눈을 빌어 애써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벌판이 되어있는 곳이 자꾸 돌아다봐집니다.

 

 

 

볼 때마다 가슴에 손 얹고 섰는 저 미륵불들의 염원은 무엇일까도 궁금했습니다.  부지런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야 나름대로의 염원이 있을테지만 마음이 허방인 사람은 소원도 없을 듯 해서였는데 자신의 염원을 위해 스스로 돌 미륵이 되지 않았을까 하다 오늘은 그저 가지런히 손을 모으는 간절함만 보기로 합니다.

 

 

 

사람 세상으로 내려와야 하는 일이 걱정되어서,  눈에 갇혀 한 사나흘 쯤 파묻혀 보는 것이 소원이기도 하지만 또 그것이 걱정 되어서지요. 아무 것도 품지 못해 제 몸이 쩍쩍 갈라진다해도 결코 속내를 들춰내지 않는 깊은 늪처럼 인적 없던 겨울 운주사, 지금 쯤  어쩌면 그 곳은 하얀 화엄이 되어있을 지도 모릅니다.

 

 

2006-12-17

 

 

출처 : 나무 그림자
글쓴이 : 의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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