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수요일
남 상 규
날씨가 흐려 무거워진 하늘이
땅에 내려앉는다
허술한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가까운 장미들의 낯빛은 어둡고
길이 지워진 하늘에서
새들은 입을 꽉 다물고 난다
하늘이 땅에 가까워지는 건
아마도 사랑 때문이리라
너무 달라 위태로운 사랑 속에서
얼굴이 흐린 너는 말이 없고
내 말들은 흔들린다
이걸 사랑이라고 말해도 될까
의문이 스친다
그러나 오늘은 이미 나 있는 길들이
쓸모 없어진 이상한 수요일이다
없는 길 속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말을
사랑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라 할 수 있겠는가
길 없는 하늘을 날던 새들이
알았다는 듯 꽉 다문 입을 일제히 연다
꿀꿀꿀꿀꿀
이상한 말들을 뱉어낸 새들은
아무래도 몸이 가벼워졌고
맑아진 내 눈 속에서 하늘은
오래도록 흐리다
남상규 시인
남상규: 1967년 출생, 지하철 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부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