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단골손님 중에는 젊은 아가씨도 있지만 주로 30대부터 60대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오히려 젊은 사람보다 나이드신 할머니들을 대할 때가 더 편하다. 그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도 하지만 젊은 사람보다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을 만날 때는 하루가 즐겁다. 어느 때는 귀엽기(?)도 하다.
물건이 완성되면 택배를 이용하여 보내는데 엽서에 시 한편 적고, 직접 따서 말린 우리나라 야생화 한 송이를 붙여서 보낸다. 그러면 반응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폭발적이다. 평생에 이런 편지는 처음이라며 연애편지를 받을 때처럼 설레였다고 했다. 꽃편지를 받은 사람은 우리집 단골이 되는 것이다. 나도 즐겁고 손님도 즐겁다.
한번은 이런 손님이 있었다. 목걸이에 달 수 있는 메달을 주문하면서 처음부터 까다로웠다. 먼저 주인보다 비싸다며 이것저것 횡설수설 어수선한 사람이였다.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메달을 맞추고 가죽 줄 하나를 더 해달라고 했는데 정식으로 주문한 것이 아니라 그만 잊어버렸다. 다음에 온 손님은 자기를 무시했다며 이런 무시는 처음이라며 울기 시작했다. 너무 서럽게 우는 바람에 어찌나 당황했던지 백배사죄하고 택배로 부쳐 주면서 꽃편지를 보냈다. 사과의 뜻으로 초코렛 한봉지를 같이 넣었다. 그가 그때 왜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그 손님은 단골이 되었고 그때처럼 까다롭지도 않았다. 마음을 다 내게 주는듯 했다. 사람이란 자기 설움에 힘들어 하고 마음이 각박해지는 것 같다. 장사를 오래 했지만 양심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는 힘들다. 별의 별 사람들 틈에서 마음을 열고 의심없이 대하고 싶은 사람이 아직은 많음에 감사하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인 남대문시장은 외국 관광객이 많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일본인이 가장 많고 미국인과 유럽쪽 사람들도 많다. 배낭을 짊어진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도를 펴들고 길을 물어가며 도보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일하기 싫어진다.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에서 자유로움이 묻어나 내게로 전해온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일년에 두어번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도보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지 경제가 급격히 저하되면서 그것 마저도 힘들게 됐다. 외국여행은 바라지도 않지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리나라 섬 여행을 하고 싶다. 가슴 가득 그리움을 안고 전국 오지를 돌고 싶다. 요즘은 성실하게 앞만 보고 살아온 댓가가 이 정도인가 싶어 서글프다. 작은 소망마저도 외면된 현실이 슬프다.
이번 여름 휴가에는 어려서 떠나온 고향길을 한번 가보고 싶다. 우리 집은 물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빈터만 남아 있지만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와 마을 뒷산으로 이어지는 학교길을 걷고 싶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서늘하던 저수지 끝에 서서 추억 속에 머무르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는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과 궁남지에 들려 처연한 연꽃에 마음 풀고, 구드레 백사장을 걸어 백마강에 발적시며 아스라히 잊혀진 옛 백제 고도의 향기에 잠시나마 취하고 싶다.
불현듯 일하기 싫어진 마음을 추스려 다시 일터로 보내야겠다. 가난한 내 삶 속으로...
-작은책 9월호
'문학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상식에서.... (0) | 2007.12.12 |
---|---|
[스크랩] 시정신의 소풍-1 (0) | 2007.11.09 |
[스크랩] 그의 風輪, 길을 따라 나서며 (0) | 2007.06.30 |
전태일..그를 만나다. (0) | 2007.03.18 |
적막 / 박남준 (0) | 2005.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