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날
한 자칭 맑스 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또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베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 받고 있다고
<시인의 말>
어느 늦가을 단풍 아래 있다가 단풍잎 한 잎 한 잎들이 모두 세상이
내게 건네준 생명의 화폐들로 보며 황홀했던 적이 있다.
돌아보니 아침이슬 한 방울, 햇빛 한 줌이 어떤 금괴보다 경이로운
보배였다. 그러니까 나는, 단 한 순간도 궁핍해본 적이 없다.
모르고 산게 어디 이뿐이겠는가. 과분하게도 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연에게서 너무나도 많은 환대와 배움과 사랑을 받아왔다. 배우고, 받아놓고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몰랐던 때가 훨씬 많았다.
뭐라고, 더 말하겠는가. 이 갸륵한 세상을 아프게 하고 독점하고 사유화하려는
못된 체제와 무리들에 대한 분개외에 무엇을 더 얻고자 할 것인가.
우연히 오게 되었지만 .... 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내 이름을 달고 나오지만 이 시집은 나만의 것이 아님을 잘 안다.
고맙다는 말을 놓아 두어야 할 이들이 많지만, 따로 새겨두지
못함을 용서하시기 바란다.
2009년 12월
송 경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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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철도 웨딩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
무엇이 보잘것 없 한 노동시인의 출판 자리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을까.
언제나 가두투쟁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시인,
그에게 술 한 잔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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