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좋아

세공하는 남자 - 신경숙 (질경이)

질경이" 2006. 2. 3. 08:02

 

   세공하는 남자

 

 

                - 신경숙

 

 

 

           그는 말이 없다

 

 

          어려서 잘못 먹은 보약이 독이 되어

          그의  귀와 말문을 막아 버렸다

          말 못하고 못 배워 가난한 그가

          세공 기술 배운 것이 그만 천직이 되어 버렸다

          취미라곤 술 마시는 것이 전부인 탓에

          배만 풍선처럼 부풀었다

          눈치가 빨라 카드도 치고 티브이도 본다

 

 

         약간 어둔 여자 만나 결혼도 했었지만 얼마 못가 헤어지고

         헤어진 이유를 말할 때는 눈 꼬리가 슬몃 올라간다

         호동그래진 눈으로 여자가 너무 모자랐다고 했다

         고집센 만큼 거짓이 없으므로 눈빛은 사파이어처럼 맑다

         잡념 없는 사유가 손끝으로만 모여

         반지며 귀고리를 마술처럼 만들어 낸다

         가끔 달랠 수 없게 고집을 부리긴 해도 그가 좋다

         꾸부정한 어깨며 안들려도 들리는 것처럼 오버하는 몸짓이며

         세상의 상처로 흔들릴 때마다 그를 보면 부끄러워진다

 

 

         오늘도 꾸부정한 그림자를 안고 적막 속에서

         그가 세공을 한다

 

 

 

     -<백미문학>11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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