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유월 불쑥 김포 집을 찾았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 너머 밤꽃이 하얗다
마을 어귀 감자밭에 감자꽃 피고
콩밭에 콩꽃이 피고
정겨운 담장마다 앵두가 붉게 익었다
담장도 없는 마당
순한 개 두마리 짖지도 않고 고개만 삐딱
논에 물대고 돌아오신 아버지
한숨 주무시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시고
들 패랭이 같은 엄마는
일당 이만원 받고 상추밭에 가셨다
부재중인 엄마의 부엌에서 아버지는
일년에 두어번 밖에 오지 않는
불효막심한 딸을 위해 커피를 끊이신다
푸른 유월에 사탕 한 봉지 소주 한병 사들고
불쑥 나타난 딸과 소주 한 잔씩 나누며
사는 게 뭐 별거냐며
서로를 위로했던가
아버지는 사탕봉지를 들고 슬며시 나가셨다
아마,이웃집에 가서 큰 딸이 왔다고
자랑을 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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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가는 길
비오는 날
강화행 버스를 타고 달려보라
후두둑 빗줄기 떨어지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길은
옛날 무지개 뜨던 그 길이 아니다
푸른 벼들의 안식 같던 풍경
불쑥 불쑥 솟아오른 아파트 마을
논밭의 구릉지대는 간곳 없이 어지럽다
누산리 삼거리를 지나면서
여기서 내리면 부모님 계신 곳이 지척인데
그냥 눈길 한번 주고 마는 것은
지금도 농협빚을 짊어지고
농사를 지으시는 흙빛 아버지가 떠올라
눈물이 날 것 같기 때문이다
눈앞이 자꾸 뿌연해지는 것은
후두둑 떨어지는 빗줄기 때문이 아니다
도로와 논의 경계만큼
도시와 농촌의 경계만큼
세상이 서럽기 때문이다
대책없이 서러운 세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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