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비오는 날

질경이" 2007. 5. 10. 12:22

                                                                           그 여자가 보내 준 함께 걷고 싶은 길

 

비오는  날

 

나는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시원스레 수직으로 내리꽂는 소나기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며 걸어본 적이 있다. 시골 길이다. 도시에서는 꿈도 못꿀 일이다. 도시에서 비를 맞고 간다면  아마 정신이 반 쯤 나간 여자로 오해 받기 쉽지만 비 온 뒤의 깨끗함도 좋고  봄비가 그친 뒤 더욱 푸르러진 산과 들을 바라보는 일이란 어느날 길을 가다  풀 섶에서 꽃 한송이를 발견한 것과 같다.  마음이 다 환해진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마을의 산꼭대기에 있었다. 마당에서 보면 멀리 작은 내가 흐르는 물줄기가 보이고

넓게 펼쳐진 들이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 탱자나무 담장 너머로 안개젖은 들을 바라보는 일이란 어린 마음에도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여름에는 유난히 소나기가 많이 내렸다.

 

멀리 들 끝으로 먹장구름이 비를 잔뜩 머금고 있다가 후둑둑 수직으로 꽂으며 점점 마을로 다가온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마을 끝에서 어느새 마당까지 급기야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저 빗줄기에 정신없이 마음을 빼앗겼다. 멀리서 풍겨오는 비릿한 비의 냄새는 또 얼마나 좋은가.

 

어느 때는 산속인데도 마당에 미꾸라지가 꾸물대기도 했고 개구리가 폴짝거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것이 빗줄기를 타고 왔다고 했다.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하며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턱을 괴고 앉아 심각하게 생각했던 호기심 많던 시절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며 비가오면 왠만한 비는 맞고 다닌다. 서울 사람들은 절대 맞으면 안된다고 산성비에 노출되면 머리도 빠지고 몸에 해롭다고 걱정을 하지만 난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언제부턴인가 비가 오면 좋아하기에 앞서 걱정거리가 생겼다. 비가 오면 다리가 불편한 그 사람이 생갔났다. 한쪽 다리로 목발을 짚고 걷는데 비가오면 우산은 어찌 쓰고 가방은 어찌 들고 걷나. 그냥 걷기도 불편해서 사람들은 불평을 하는데 어찌 가파른 언덕배기를 오르나. 멀쩡한 다리가  있다는 걸  감사한 적 있었던가.

 

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렸다.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사무실까지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그의 고단한 하루가 내내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