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다시, 서해바다....

질경이" 2008. 4. 12. 23:57

 

바다가 보고 싶었다.

2년전 그 바다가 보고 싶었다.

서울에서 부터 따라온 비는 부두를 적시고 봄빛을 머금고 있는 나무들을 적셔 주었다.

팔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은 바다,

그 바다 위를 날으는 갈매기를 바라보는 마음이 사뭇 그때와 다르다.

 

그때도 비가 내렸었다.

힘들게 꾸려 나가던 가게를 10년만에 접고 파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가슴에 주홍글씨처럼 새기며 죽음이란 걸 생각하며 왔던 바다였다.

좀처럼 좌절을 모르던 낙천적인 내가 생을 포기하고 싶었고, 사랑하는 가족 조차도

귀찮아 했다.

그런 내게 죽음이 사치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 있었다.

 

이 바다에서 만난 횟집 여자 때문이다.

까뭇한 작은 얼굴에 생머리를 소녀처럼 찰랑거리던 여자.

서울에서 쫒기다시피 내려와 이 한적한 부두에 몸을 맡긴지 여러해 되었다던 여자.

빚에 쫒겨 남편과 아이들을 봄날 나뭇짐 부리듯 와르르 부려놓고 왔다는 여자는

미소를 맑게 담아 내게 소주잔을 건넸었다.

비가 내렸고 평일이라 한적한 오후에 찾아든 나를 그녀는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하더니 자기 얘기를 또박또박 잘도 했다.

만약에 죽음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자기 얘기가 도움이 될꺼라고 했다. 서울에서 제법 크게 횟집을 했다는 여자는

아직도 이자만 이백만원이 넘는 돈을 2년은 더 갚아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서울에서 공사판을 전전하고 아이들을 할머니 댁에 맡겨져 하루 하루를

곡예하듯 살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바닥까지 내려가 봐야 바닥을 차고 올라오는 힘이 생기더라고

선생님처럼 날 위로했다.

그렇게 밤은 깊었고, 갈매기 소리는 밤새 내 귓가에 끼룩거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나 문득 그녀가 보고 싶었다.

나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기도 했지만, 어느 민중가수의 미소를 닮았던 그녀가

보고 싶었다.

그 횟집에 여자는 없고 낯선 아주머니가 그 여자는 바다끝 횟집에서 일한다고 했다.

비를 맞으며 바다를 걸었다.

천천히 걸어 그녀에게 갔다.

그녀는 단번에 날 알아보고 상냥하게도 바닷가를 같이 걸어 주었다.

더욱 갸날퍼진 그녀는 그방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은 소금인형 같았다.

바다는 잘 길들여진 개처럼 순하게 엎드려 마을을 풍요롭게 감싸안고 출렁였다.

온전하게 난 바다에 취했다.

삶의 벼랑끝에서 만났던 그녀를 난 가만히 오래 바라 보았다.

 

그녀와 바다, 그리고 이즈음에 만났던 한 시인이 나를 다시 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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