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3일>
어머님과 청량리에 있는 경동시장에 장 보러 갔다.
구정에 쓸 제수를 장만하기 위해서다. 하필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무척이나 춥다.
바퀴달린 리어카(?) 손수레를 끌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열정이 젊은 사람 두 배가 되고도 남는 우리 어머님이 운전사 뒤에 앉았다.
마치 조수처럼.
언제나 그 열정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는데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고, 어머님의 눈은 빛나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 차 세무서 가요?"
"안가요"
조수격인 어머님이 "가요, 타요 타!"
성바오로병원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금방이라고 하자.
운전수 아저씨가 째려봤다.
그건 아저씨에게 모욕이고 월권이였다.
"할머니가 뭘 안다고 나서요?"
어머님이 기다렸다는 듯
청량리에서 미주아파트와 세무서 까지 따발총으로 속사포를 날리자
아저씨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수긍하는 듯 힐끔거렸다.
얼마 지나자 이제는 내리는 아주머니가 지하철 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냐고 물었다.
어머님은 운전수보다 빠르게 두 정거장 가면 지하철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불안했지만 늘 그랬듯이 일행이 아닌 것처럼 핸드폰만 들여다 봤다.
그러자 다음 부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묻기 시작했다.
어머님은 신이나서 목청이 더 커졌다.
곰처럼 눈두덩이 두터운 운전수도 궁금했던 것들을 눈두덩을 꿈벅이며 이것 저것 묻자.
뒷쪽에서 아저씨와 자리를 바꾸라고 하며 웃고 난리였다.
나는 점점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쏟아 놓은 단감
대추 <아들이 새로 산 똑딱이 카메라로 찍었더니 촛점이 맞지 않는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계단에서 넘어져 골반수술을 받은 뒤로 다리를 저시는
어머님은 의사도 그 의지에 감탄하시며 혀를 내둘러었다.
가까운 시장을 놔두고도 꼭 먼 경동시장까지 나오는 이유가 사람냄새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티브이도 인간극장이나 다큐를 좋아하시고 무엇보다 퀴즈프로를
즐겨보는 것만 봐도 일반 할머니들과는 다르다.
공부는 초등학교 문 앞에도 안가봤다고 하니 공부와는 별개인 것 같다.
지하 <어물전> 어둡다. 백열등이 빛을 발하던.
2마리에 13천원 주고 동태포를 떠 왔다.
나는 시장 풍경을 찍는 답시고 카메라와 리어카를 끌고 어머님 뒤를 강아지마냥 따라 다녔다.
어머님은 가는 곳마다 나를 며느리라고 소개했고, 나는 끄덕였다.
어머님은 체격이 크시고, 내가 작은 탓도 있지만,
어머님의 열정에 묻혀 나는 덤으로 동정을 받기도 했고,
나는 그걸 종종 이용하기도 한다.^*^ ㅋㅋㅋ
바퀴달린 손수레는 점점 무거워져 한번 위로 들어 보니 끔쩍도 안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갈 길이 막막하다.
"어머님 갈 때는 택시타고 가요"
"택시비가 얼만데 ,그냥 버스타고 가자."
"무거워서 어떻게 들어 올려요"
다리도 성치 않은데 어쩌시려고 그러시는지ㅠㅠ
옆에서 듣고 있던 가게 주인이
"어머님, 오늘은 며느님 말 들으세요" 하자.
"우리 며느리는 내 말만 들어"
나는 신경을 안쓰는척 하며 카메라로 과일과 야채를 찍었다.
상어고기
마지막으로 들린 고깃집...젊은이들이 뜨거운 커피를 타주었다.
버스에 오르는데
어머님이 앞에서 잡고 나는 뒤에서 들어 올렸지만 꿈쩍도 안한다.
사람들은 뒤에 밀려 있고, 좁아서 누가 거들지도 못하자.
운전수 아저씨가 내려서 뒤에 아저씨와 번쩍 들어 올렸다.
창피해서 손수레 뒤에 바짝 붙어 앉았다.
무게에 눌려 손수레가 자꾸 뒷쪽으로 밀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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