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風輪, 길을 따라 나서며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고-
작가 김훈이 지은 책은 거의 다 읽었다.
그의 책중에서도 <자전거 여행>은 두번이나 읽었다.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자전거 여행이 주는 감흥은 남다르다.
수필의 백미라 불리는 피천득의 <인연>을 읽을 때처럼 온 몸에 전율을 일게 하고 온 몸을 얼게 하는 책이다.
빠르게 진행되는 디지털 시대에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그의 자전거 꽁무니에 매달려 세상 구경을 떠나보자.
봄의 꽃들과 바람, 길들여 지지 않는 길들과 숲을 통과하는 여행길에 몸 안으로 강물의 흐름을 본다.
그렇게 나의 여행길에 작가가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길은 여러번 겹쳐졌다.
언젠가 정월 초하루를 영주 소백산에 있는 부석사에서 보낸적이 있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도 소개된 부석사를 보기 위해 십이월의 마지막 날 을씨년스러운 고속도로를 달렸었다.
마구령 산길을 따라 소배산을 넘어가는 작가의 여행기는 서걱이는 메마른 가슴을 따스하게 감싸주며
부석사의 아침 햇살을 새록새록 생각나게 한다.
19번 국도를 따라가며 보라는 그의 말처럼, 물빛 고운 아득한 섬진강 길을 따라 갔다.
벚꽃 터널을 이루던 쌍계사의 십리벚꽃 길은 또 어떤가. 구례 악양의 붉게 노을진 무딤이들의 들녁은 또 어떤가.
꽃보다 아름다운 새 잎들 바람이 불때 마다 일제히 빛을 바꾸는 은사시나무 숲에서 섬진강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전거를 세워두고 강물을 바라보는 그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선암사에는 두번 갔었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암사에 한번 가보고 죽으라고.
선암사에서 상사화를 보고 그 쓸쓸한 사랑에 대하여 얘기해 보라.
그러나 이른 봄 선암매를 만나지 않고는 선암사를 말하지 말자.
몇년 전 무더위가 최고로 우리나라를 덥히던 여름에 선암사에 갔었다. 그리 보고 싶었던
벗을 만나러 간 것이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나뭇잎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벗은 서 있었다.
천천히 걸어 말없이 선암사 오르는 길을 걸었다.
말을 하면 봇물같던 그리움이 터질 것 같아 조심스럽게 올랐다.
귀를 찌르는 매미소리도 바람소리도 옆으로 흐르던 물소리도 정지된 화면처럼 고요했었다.
팔상전 앞에 핀 상사화를 보았다. 엷은 분홍빛의 상사화는 나리꽃을 닮았다. 아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불리어서 그런지 화사함 속에 쓸쓸함이 배어 나오는 듯 했다. 돌탑 사이로 천연하게 핀
상사화를 보며 기도를 했던가. 그렇게 여름은 가고 그 후로 벗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이 책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마암분교는 몇해전 첫 눈이 온 세상을 덮던 날 찾아 갔었다.
일요일이고 방학이라 아무도 없는 숲에 시인 김용택 선생님은
나 만큼이나 작은 키로 산모퉁이에 서 계셨다. 길을 잘못 들어 작은 숲으로 접어들자 어디선가
내 이름을 산이 쩡쩡 울리게 부르시던 순수그 자체이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그립다.
시린 호수와 파란하늘 방학이라 텅빈 학교와 뒷산 솔숲은 살아온 날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해남 유수영에서 충무공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칼은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 없는 단순성이야 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다"
이 글을 읽다 보면 나중에 쓴 "칼의 노래"가 <자전거 여행>에서 나왔으며 이 여행이 주는 목적을 어렴풋하게 나마 알게 된다.
이순신의 내면을 무겁게 짓누르는 통제된 내면의 힘을 그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글은 많은 사람들이 격찬했듯이 엄결하고 섬세하다. 사유와 언어의 정수라 할만한 글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있어서 참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여명님여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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