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밭으로 나간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햇살이 곱게 꽃가루처럼 날리던 날
고추밭을 꽃밭 가꾸듯 마음을 다 주고
나무마다 간짓대 세워 하늘정원 만들더니
가르마길 따라 홀로 들어가신 후
가지마다 하얀 조등으로 내걸렸다
모시적삼 검정치마 손수 만들어
내게 입혀주던 할머니는
거짓말 같지만 모시삼는 법과 째는 법을
달빛 아래서 가르쳐 주었다
내 나이 아홉살,
어른보다 솜씨가 좋구나
도란도란 달빛 아래 할머니는 모시를 삼고
나는 모시를 쨌다
풀포기 하나없이 정갈한 고추밭
차마 들어갈 수 없어
멀리서 할머니의 쪽진 머리만
낮달처럼 둥글게 말린 등만
서럽게 바라보던 날
납짝 엎드려 잎사귀만 무성하던
그날
버선발로 나선 신작로 길에
햇살만 눈부셨다
<당선소감>
내일이 어머님 생신이라 이것 저것 만들다 보니
자정이 훨씬 넘어 컴퓨터에 앉았다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민들레 문학상에 남다른 사랑을 가지고 있던 저는
1회부터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응모 했는데
어떤 목적이 있기 보다는 그냥 그러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밟아도 뚫고 일어나는 민들레처럼
소박한 문학상의 취지가 참 마음에 들기도 하였습니다.
숲 가장자리 초가집에서 할머니와 나는 모시를 삼고
어머니는 베를 짰습니다.
지금은 집터조차 흔적없이 사라진 그 집이 그립습니다.
오늘밤 혹, 제게 할머니가 오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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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신경숙이고요.
작은 금방에서 판매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주인 몰래 시와 수필을 쓰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