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한계령에서

질경이" 2009. 9. 9. 21:35

      한계령에서

 

 

마음이 자꾸 흔들려서, 어디론가 떠나야지 마음 먹었다.

헛헛한 가슴 채우기란 어려운 것이어서 처음 보는 꽃을 만나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여름은 저만치 밀려나고 가을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을 예감하며 길을 나섰다.

한 여름의 꽃은 정열적이어서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짧은 찰나를 도도하게 즐기기 때문이다.

가을을 불러 오는 햇살이란게 여간 따갑지가 않다.농부들은 뜨거운 여름을 뜨겁다고 불평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워야 곡식이 자라고 익기 때문이란다.

가을의 청명한 날씨는 평일이 주는 여유와 맞 닿아 한적했고, 시골길은  무성한 풀들로 가득했다. 

하늘은 파란 호수를 띄워놓은 듯 아름다웠다.

강원도 산골 마을을 통과할 때는 풀냄새 흙냄새가 진동했고, 햇살은 마당에 내다 말리는 고추 위에서 빛났다.

 

 

 

 산구철초....처음본 분홍색이다

 

 

한계령에 가면 사진으로만 보던 금강초롱꽃을 만날 수 있을까?

올 해는 꼭 보고 말겠다고 다짐 했지만,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사는지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진기를 메고 산과 들로 꽃을 찾아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은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부러워도 하고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꽃이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나는 가난을 밥처럼 매달고 사는사람이고, 부자는 더 더욱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취미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것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꽃보다는 숲이 좋다. 숲이 좋은데 마냥 숲에 앉아 있기 보다는 이름모를 꽃 한송이에 취한다는 것 또한

얼마나 매력적인 달콤함인가.

 

 

 

 

 금강초롱

 

 

 

숲에 든다는 것은 등산과는 다르다. 등산은 죽으라 힘과 열정을 다해 정상을 향해 오르지만 사진 찍는 일은 천천히 걸으며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사색의 시간이다.

계곡의 물이 노래를 하고 나무가 말을 건다. 꽃이 윙크하고 새가 휘파람을 분다.

숲은 그런 것이다. 탁한 도시에서 물든 때묻은 것들을 씻어 준다. 그래서 산에 오르는 까닭이다. 

나에게는 잃어버린 재산도 팔아버릴 집도 없다.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이 무슨 욕심이 있어서 잃을 것도 없는 것에 매달리겠는가.

다 버리고 난 뒤에야 지금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날들인지 깨달았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쑥부쟁이 

 

 

 

흔들리면서도 곧은 삶을 산다는게 어디 사람 뿐일까. 한포기 풀에도 한그루 나무에도 흔들리면서 곧아지고 뿌리가

깊어지는 것이다.

숲에 든다는 것이 무념의 나를 만나는 것이고

꽃 앞에 무릎 꿇는다는 것은 나를 낮추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내가 행복하면 내 주변이 행복해지고 환해지리라.

 

지금 한계령은 꽃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야생화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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