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26 > 강화
정기출사가 취소되고, 카메라를 메고 나온 나는 길을 묻는다.
"어디로 갈까요?"
걸어서 또는 시외버스를 타고 낯선 곳에 닿기를.....
비가 퍼붓는 간이역 이거나, 한적한 휴게실에 들러 우동 한 그릇이라도 뚝딱 비우고
낯선이에게 말이라도 거는 날에는 왠지 간지러운 바람이 된다.
그 언젠가 찾았던 겨울바다, 그 강화 바다에 다시 마음은 놓는다.
김포 48번 국도를 타고 대명항을 지나 초지대교를 건너....
초지진, 광성보, 용두돈대가 있는
국화리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끝 숲속에 아는 소설가가 사는 강화에서
오늘 유유자적 추억을 줍는다.
초지대교가 보이는 작은 포구에서 사진을 담으며.....
바다 낚시를 하는 가족들 틈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가족이란 참 애잔하다. 연민의 눈길이 오고 간다.
강화나들길을 따라 가보자.
바다를 본다.
바다에서의 아이들은 이미 아이가 아니다.
어른처럼 사뭇 진지하다.
해당화가 지고 있다.
바다에는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남긴 추함도 있다.
고단함 삶도 있다.
동행해 준 벗이 있어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바다는 또 다시 아이와 어른을 한데 모으고,
평화와 풍요, 사랑을 베푼다.
내가 좋아하는 김포평야ㅡ
나는 지금도 논과 밭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열네살 처음 고향을 떠나 서울 영등포역에 내렸을 때,
그 참담함이란 어린 내가슴을 후벼파고도 남았다.
열네살 영등포역은 비루했다.
초가집보다 더 납작하게 업드린 판자촌이 그랬고,
연탄재가 가난하게 뒹구는 질퍽한 골목길이 그랬다.
종일 울었다.
두고 온 감나무가 신장로가,
미루나무가, 대나무로 엮은 사립문이 그리웠다.
아홉살 무렵에 처음으로 모를 심었는데....
아버지가 잘 심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때부터 난 커서 농사꾼이 되어야지 마음 먹기도 했다.
논과 밭은 점점 사라진다.
인간의 이기로 아파트로 변해 간다. 하긴 농토가 있으면 뭐 할까?
앞으로 농사지을 사람도 없어질텐데.... 나중에 우리가 먹는 것은 전부 수입을 해야 할 것이다.
자급자족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아마 머지 않아 식량부족 국가가 될 것이다.
식당 뒷편 화장실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가 보인다.
무용지물인 환삼덩쿨이 가는 곳마다 뒤덮여 있다. 정말 아무쓸데 없는 풀일까?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은 없다고 들었는데.....
고구마 밭이 보인다.
학교 십리길 산비탈에 고구마 밭이 있었다.
하굣길에 지나며 고구마를 캐어 길가 마른풀에 쓱쓱 문대어 먹던 기억들
무를 뽑아 먹고 집에 오는 내내 속 아프던 기억.....자꾸 어린 내모습에 연민이 인다.
우리는 풍차 마을을 지나고....
내가면에 있는 아주 오래된 양복점 앞을 지나고
낡은 것만 진열해 놓은 듯한 풍경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수수가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곧 가을이다.
밤나무가 지붕 위에 몸을 누이고.....
밤나무와 호박밭 사이에 냉장고가 버려져 있다.
돌아오는 길......창밖으로 쓱쓱~~~풍경이 지나간다.
하나의 추억이 쓱쓱 지나간다.
동행해 준 벗들 : 하늘바람, 굿맨, 샤넬님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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