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의 아침 11 삼각산의 아침 아주,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는데 손톱만한 그믐달이 따라온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젊은이가 지나가고 어젯밤 불면으로 까칠해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마른 세수를 한다 넘어질듯 가파른 길을 올라 산정에 섰을 때 알았다 바위에도 리듬이 있다는 것을 발바닥에 느껴지는 바위의 노.. 시가 좋아 2010.10.24
부여가는 길 부여 가는 길 부여로 갑니다 그대를 동행하지 않았다 하여 서운해 하지 마세요 뙤약볕 발자국마다 눈물이 고여요 계백장군 동상을 지나 궁남지로 가는 길 갑자기 부는 바람에 연꽃이 와르르 집니다 아버지가 동네이장 빚에 도망치듯 새벽 기차를 타지만 않았어도 아직도 오래된 감나무.. 시가 좋아 2010.08.17
Chris Spheersㅡ Andalu 7 하늘공장 저 맑은 하늘에 공장 하나 세워야겠다 따뜻한 밥솥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곳 무럭무럭 아이들이 자라고 웃음방울 영그는 곳 그곳에서 연기나는 굴뚝도 없애고 철탑도 없애고 손과 발을 잡아먹는 기계 옆에 순한 양을 놓아 먹이고 고공농성의 눈물마저 새의 날개짓에 실어 .. 시가 좋아 2010.08.10
<시> 변산바람꽃 변산 바람꽃 바람나고 싶은 날이다 오늘은. 부안 변산 어디쯤 꽃이 피었다고 고삐풀린 바람이 가슴에 쟁여놓은 그리움을 툭 하고 건드렸다. 그 길 따라 가자 먼지나는 흙 길 끝에 걸린 푸른양철지붕 아래 툇마루 무릎 세운 할머니 깍지 낀 손등 위로 벌이 날아든다 아흔살 저승꽃 피운 얼굴 변산아씨로.. 시가 좋아 2010.03.06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ㅡㅡㅡㅡ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날 한 자칭 맑스 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 시가 좋아 2010.01.15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 재 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을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ㅡ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번 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 시가 좋아 2009.10.25
복수초 복 수 초 당신은 어디서 오는지 바람을 몰고 오는지 비를 머금고 오는지 먼 길을 걸어서 오는지 새처럼 날아서 오는지 속살거리는 먼지처럼 오는지 언덕 넘어 해거름 보랏빛 어둠이 내리는데 더디 오는 사랑을 무작정 기다리는 수 밖에. 아끼던 복수초 날아가 버리고 대신 피나물로~~~ 시가 좋아 2009.06.24
사월의 바람 사월의 바람 바람꽃에게 사월의 바람이 부네 약속도 없이 겁도 없이 내게로 오네 빗장 걸고 바람속을 나서네 잠시 내게 말걸던 소년이 사라진 숲 길을 보네 그 길 따라 한번 가보려 하네 겨울 지나 봄이 오는 길. 이제 길을 나서네 시가 좋아 2009.04.21
보이지 않는 사랑 보이지 않는 사랑 눈에 보이는 것만 사랑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고즈넉한 가을, 저무는 바닷가에서 하루종일 대지를 달구던 태양도 사랑에 겨워 제 보습 감추는 것도 다 사랑임을 알았을 때 드러나는 것 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봄 내 제살깎아 초록향기 피워 올렸던 나무도 .. 시가 좋아 2009.03.25
민들레문학상 그 날 밭으로 나간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햇살이 곱게 꽃가루처럼 날리던 날 고추밭을 꽃밭 가꾸듯 마음을 다 주고 나무마다 간짓대 세워 하늘정원 만들더니 가르마길 따라 홀로 들어가신 후 가지마다 하얀 조등으로 내걸렸다 모시적삼 검정치마 손수 만들어 내게 입혀주던 할머니는 거짓.. 시가 좋아 2009.03.04